김향미

8월 1일
그렇게 조바심과 설렘에 기다렸던 그 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새벽의 어스름 속에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다.
김포에서의 출국 수속을 끝내고서 인천으로의 버스를 기다리며
잠시 벤치에 앉아 눈을 감는다.
조금은 들뜬 분위기가 귓가에 맴돈다.
그저 아무렇지도 않다고 느끼는 생소한 느낌이
메마른 아침에의 눈을 한 방울의 안약으로 위로하는
나를 은근하게 붙잡고 있을 뿐.
눈을 감고 이륙의 순간을 느낀다.
엔진의 강한 울림과 함께, 활주로에서의 풍경은
조그마한 무엇으로 아득하게만 느껴지고..
한시간 반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창밖의 푸른 하늘과
그보다 조금은 더 푸른 바다가 보인다.
Narita 공항에서 리무진 버스를 타고서
숙소가 있는 ikebukuro로 향한다.
살펴보니, 운전석이 오른쪽이고 버스 입구가 왼쪽에 있다.
왠지 생소하면서도 어색한 느낌이 든다.
피곤함에 잠시 눈을 감았다 떠보니
캠코더가 아이들의 얼굴을 하나씩 비추고..
'헉.. 조금만 방심했더라면..' 하는 생각이.
풋풋한 웃음을 만들어 낸다.
심명순 선생님과 그 옆좌석의 외국 사람의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느낄 수는 있는 대화가
나의 호기심을 끌어당기고 있다.
일본인인 부인과 아이가 보고 싶어서
일본에 찾아왔다는 그 외국인.
사람 사이의 정은 누구에게나 보편적인 감정임을
새삼스레 확인할 수 있었던 듯 싶다.
ikebukuro의 후덥지근한 공기와 짐들의 기나긴 행렬들.
누가 그랬던가. 숙소인 '한국관'이 도보로 10분 거리라고..
연달아 식량 꾸러미들을 횡단보도에 떨어뜨리면서
이러다 완전 박살나는 건 아닌지..
축축 늘어지는 몸을 이를 악물고서 짐과 함께 끌어간다.
배정 받은 방의 열쇠를 쥐고서 방문을 열자
익숙지 않은 다다미 특유의 냄새가 물씬 풍겨 온다.
몸을 씻기고 짐을 어느 정도 정리를 해 놓은 후의 시간에
9일간의 일정에 대한 모임이 있었다.
중대 발표가 있다는 예고에 모두들 귀를 기울이는데..
이런.. 여행 경비에 있어서 문제 발생.
숙박비가 20% 선불이었다는 것을 미처 생각지 못한 까닭에
그만 앞으로의 여정에 조금의 변동이 있을 듯.
심각함 속의 가라앉는 분위기에도
이대로 도쿄에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원래의 목적이 무엇이었던가.
'과학 제전 참가'가 아니었던가.
덕분에 9일간의 일정이 수정되었다.
1일은 숙소 도착
2일은 자유시간
3일, 4일은 과학 제전 전반부 견학
5일, 6일, 7일은 과학 제전 참가
8일은 자유시간
9일은 집으로
도쿄에서의 첫날밤은
미명 속의 어둠과 함께 깊어 가고만 있었다.

8월 2일
오늘 하루는?
도쿄 도청(東京 都廳) →아사쿠사(淺草) →도쿄핸즈(Tokyu Hands, 東急ハンズ池袋店)
도쿄에서의 이튿날은 자유 일정.
김인수 선생님과 설희 그리고 나 이렇게 세사람의 하루를 소개할까 한
다.
* 도쿄 도청(東京 都廳)
도쿄 도청은 丸ノ內線(Marunouchi Line - 빨강색)의 신주쿠(新宿) 역에 위치하고 있다.
동경 타워 전망대의 경우 약 700엔 가량의 입장료가 있는 것에 비하여, 도쿄 도청 45층의 전망대는 무료이다.
1층의 엘리베이터 앞에 가게 되면, 안내 직원이 세 개의 공란이 있는 팜플렛을 하나씩 준다.
공란 옆에는 45층, 9층, 2층 이렇게 세 개의 층이 안내되어 있다. 그곳에 가서 스탬프를 다 받아 오면 기념품을 준다고 한다.
45층은 전망대로, 도쿄의 전망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일본은 한국과 달리 산이 거의 없기 때문에 내려다보면 좀 밋밋한 감이 없지 않다. 대신에 한국보다는 도심 내에 공원이 많은 것 같다.
엘리베이터 옆에는 기념품 판매점이 있다. 도쿄의 모습이 담긴 엽서에 그 순간의 느낌을 끄적여보는것도 좋을 듯 싶다.
9층은 도쿄도 방재 센터(東京都防 中心)가 있다. 한국의 재해 대책 본부실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워낙에 지진이 자주 발생하는 탓일까. 지진 발생 시의 대책 등이 본인이 갖고 있는 한국어 팜플렛에도 실려 있다.
2층에는 음식물과 자연 보호에 관한 자료실이 있다. 그곳에는 음식물과 식물의 표본이 전시되어 있다. 한편에는 컴퓨터 게임 형식으로 관람 내용을 확인하는 문제를 확인할 수 있다. 출구에서는 팜플렛의 스탬프들을 확인하는데, 슬롯 머신이 돌아가는 컴퓨터 화면을 클릭하면 그에 따라 기념
품의 종류가 달라진다. 설희의 경우, 세 개의 그림이 일치해서 불이 들어오는 플레쉬를 받았지만, 본인은 아쉽게도 조그마한 탁상용 메모지와 반창고를 받았다.
도청(都廳)의 몇몇 부분을 둘러보며 스탬프를 받아 기념품을 받을 수 있게 한 아이디어가 독특하게 생각되었다.
* 아사쿠사(淺草)
일본의 지하철 노선도를 전부 믿는다면 다리품을 엄청나게 팔 것임을 주지시켜 주고 싶은 것이 이때의 경험에서 나온 생각이다. 사실, 신주쿠에서 아사쿠사까지 가려면 지하철을 몇 번이고 갈아타야 할 것임에도, 일본 지하철 직원의 도움으로 淺草線(Asakusa Line - 자주색)의 신설 구간을
이용하여 좀더 쉽게 갈 수 있었다. 아쉽게도 본인이 가지고 있는 지하철 노선도에는 이 구간이 표시되어 있지 않다. 김인수 선생님의 디지털 사진기에 이 구간이 찍혀 있을 것이라 짐작이 된다.
아사쿠사(淺草) 역에 도착하면, 일본의 분위기가 물씬 풍겨 나온다. 한국의 절은 대부분 큰 문의 두 문짝이 환히 열려있는데에 비하여, 이곳의 문은 프랑스의 개선문 마냥 문짝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본인이 정문 앞에서 일본 여학생 두 명과 함께 사진을 찍었으니, 나중에 혹시나 기회가 된
다면 보여드릴수도 있다.
아사쿠사를 통한 큰 길 양옆으로는 상점이 줄지어 있다. 기념품의 종류도 장난감에서부터 부채, 전통 과자 등 각양각색이다. 도착한 시간이 점심때에 가까워 배가 고파 이리저리 기웃거리다가 100엔 짜리 쌀 과자를 발견, 설희와 함께 먹어 보기로 하였다. 그러나 아뿔싸.. 그 호기심이 100 엔을 아깝게 할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간장이 발라진 뜨거운 쌀 과자. 그러나 간장 맛이 이건 보통이 아니다. 마치 한국의 국간장같은 맛이다. 짜다 못해 쓴맛이 나는 과자를 먹느라 이맛살이 찌푸려진 것은 사실이다. 나중에 찹쌀 경단 튀김은 좀 나았지만 그 간장 과자의 끔찍한 맛은 절대 잊을 수 없다.
아사쿠사를 들어서며 가장 먼저 호기심을 가졌던 것은 불상을 감싸고 있는 천조각들.
나중에 심명순 선생님의 말씀을 들어보니, 턱받이 천조각은 어릴 때 죽은 영혼을 위로하는 의미이며 불상의 몸을 감싸고 있는 천은 교통사고로 죽은 사람들의 넋을 달래기 위함이라 한다. 일본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그래서 신사에서 파는 교통 사고 방지 부적을 아이들에게 항상 지니게 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아사쿠사 한쪽에는 みくり(Mikuri 였던 것 같다)라는 점보는 곳이 있다. 100엔을 넣고(안 넣어도 상관은 없다) 통을 흔들어 조그마한 구멍으로 나무 가닥을 뽑는다. 그 나무 가닥엔 조그맣게 숫자가 파여있다. 그 숫자에 맞는 서랍을 찾아 종이를 꺼내어 점괘를 확인하면 된다. 점괘의 결과는 믿거나 말거나. 점괘를 확인한 후 그 종이는 옆에 있는 빨랫대 비슷한 것(표현이 좀 어색하군요. 그림으로 표현하면 좋을 텐데)에 묶어 놓고 가면 된다.
아사쿠사 본당에 들어가면 향 피우는 냄새가 진동을 한다. 향로에 향을 피우고 향 기운을 쐬는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향을 피우고 그 향을 쏘이면 악귀가 도망간다고 한다. 또한 그 옆에 있는 샘물은 조그마한 국자로 떠서 입을 헹구는 것을 세 번 반복하는 것이라 한다. 일종의 정화 의식이라 생각된다. 물론 그 샘물을 먹어도 상관은 없으나 본인이 보기로는 그 물이 그리 맑아 보이진 않았다.
아사쿠사를 가는 큰 길 양옆에도 많은 상점들이 일본 과자를 팔지만, 본당 입구 가까운 곳에 '원조 일본 전통 과자점'이 있다. 약 12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가게라고 한다. 그곳에서 세 사람 모두 각자의 취향에 맞게 선물을 샀으나, 설희와 함께 구입한 그 선물은 각자의 가족들이 한 입에 질려 버려서 지금까지도 냉장고 한 쪽을 용감무쌍하게 차지하고 있다. 일본 과자를 살 때는 호기심보다도, 반드시 본인들의 취향을 고려해 볼 것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아사쿠사를 나오면, 외국인(주로 서양인)을 노리는 전문 호객꾼이 무리 지어 있다. 그들은 인력거 위에 관광객을 태우고서 아사쿠사뿐만 아니라 그 주위를 안내하기도 하며, 멋진 포즈로 그들과 기념 사진을 찍기도 한다. 우리 일행 세 사람이 일본인같이 보였을까. 불행인지 다행인지 우리에게는 한마디도 걸어오지 않았다.
* 도쿄핸즈(Tokyu Hands, 東急ハンズ池袋店)
도쿄 핸즈에 관해 이야기하기 전에, 경험에서 얻은 짭짤한 팁 하나를 소개해 드릴까 한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일본은 한국과 달리 지하철 운영 회사가 다르면 표를 다시 구입해야 한다는 번거로움이 있다. 같은 회사가 운영하더라도 선(線)의 종류가 다르면 'Orange gate'라 하여 귤색 표시의 기계에 표를 넣어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Thank you)'라는 안내문과 함께, 기계가 표를 낼름 삼켜버릴테니 말이다.
실제로 본인이 홀로 지하철을 타다가 'Orange gate'가 아닌 곳에 표를 넣었다가, 지하철 직원과 그나마 통하지 않는 일본어에 영어로 실랑이를 한끝에, 그 직원은 기계를 열고 본인에게 표를 돌려준, 웃지 못할 경험이 있다.
우리 일행이 아사쿠사에서 池袋(Ikebukuro) 역으로 가기 위해 환승역인 上野(Ueno)역에서 같은 회사 선으로 갈아타려고 하였으나, 지하철 직원에게 물어 보니 불가능하단다. 그래서 JR을 타야 할지 물어 보아 山手線(Yamanote Line)을 이용하면 좀더 손쉽게 갈 수 있다고 하였다. 한국의
2호선(순환선) 개념이라 보면 비슷할 듯 싶다. 참고로, 이 선(線)은 지하철 노선도에는 전혀 표시되어 있지 않으니 주의하시길 바란다.
지하철 이야기는 이쯤에서 접어 두고, 한국에서 각종 전자 부품을 사려면 어느 곳으로 가야 하는지 아시는지.. 혹시 '청계천'이라고 들어보셨을지 모르겠다. 그럼 전자 제품은? 이 글을 읽는 당신께서는 용산 전자 상가나 강변 테크노마트를 떠올리셨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도쿄 부근에서 이런 모든 것들을 쉽게 구입하려면? 당연히 도쿄 사람들은 '도쿄 핸즈'를 떠올릴 것이다. 이 정도로 이 곳은 없는 것 빼고는 다 있는 만물 상자이다.
일본어, 중국어, 영어 팜플렛은 있으면서도 한국어 팜플렛은 없었다. 덕분인지 때문인지 본인은 영어와 일본어 팜플렛 이 두 개를 집어 오는 수밖에 없었다.
도쿄 핸즈는 총 8층으로 구성되었는데, 각 층별로 물건들의 종류가 분류되어 진열되어 있었다. 크게 구분을 하자면, 8층은 Pet shop, 7층은 여행에 관련된 물품과 차(車)에 관한 물품들, 6층은 사무 용품과 학용품, 팬시용품, 5층은 가구와 커튼, 카펫 등 가정 용품, 4층은 용구와 페인트, 공구 등을, 3층은 욕실 용품과 주방 용품을, 2층은 여가 용품을, 1층은 안내 센터와 핸드폰 등 잡다한 것들을 진열해 놓고 있었다. 팜플렛 뒷부분을 보면 INDEX라 하여 물품이 몇 층에 있는지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하였다.
8층은 Pet Shop이다. 잘 찾아보면 햄스터, 토끼 같은 동물들이 조그마한 플라스틱 집에서 삐익~ 콧소리를 내며 자고 있다. 동물 먹이도 상당히 종류가 다양하다. 애완 동물에 관한 책들도 구비되어 있다. Cat playland라는 고양이 놀이터가 있는데, 그곳에는 들어가 보지 못했다. 7층은 가방, 캠핑 용구, 나이프, 옷을 만들 수 있는 여러 가지 천, 플라모델, 정원을 꾸밀 수 있는 씨앗 등이 있었다. 개인적인 견해이건대, 이 층의 특징은 대부분의 제품이 완제품이 아닌 제품의 재료라는 것에 있다. 완제품보다는 제품 재료가 값이 더 저렴하며, 직접 만듦으로써 똑같은 재료임에도 각자 다른 제품이 완성된다는 것에서 소비자들을 자극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6층은 중고생들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학용품들과 팬시용품으로 가득하다. 교실 칠판 두 배 정도의 벽면에 각종 스티커가 가득하다.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것들이 참 많다. 여러 색의 샤프심도 있고, 지우개로 지워지는 색볼펜도 있다. 그렇지만 가격이 만만치 않으니 주의하기를. 또한 5%의 세금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일본은 한국과 달리 자판기 물품을 제외한 모든 물품에 5%의 세금이 붙는다.
하루의 일정에 지친 탓에 5층과 4층, 3층, 2층은 둘러보지 않았다.
* 저녁 식사
도쿄 핸즈를 방문하고서 숙소에 돌아오면서, 저녁을 먹어야 할텐데 하면서 들린 곳이 바로 도시락 가게.
숙소로 가는 길에 있는 이 가게 이름은 オリジン弁? (Origin bento).
도시락의 평균 가격은 400~600엔 사이. 양과 맛에 비해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속한다고 본다. 설희와 함께 'かつ '이란 덮밥을 선택했다. 덮밥에 포크커틀릿이 얹어진 것으로, 이것의 가격은 480엔. 그곳에서는 먹을 수가 없기 때문에 숙소에 가서 먹었는데, 누가 일본이 소식(小食)이라 했던가. 먹다가 먹다 지쳐서 나중엔 480엔이라는 돈을 떠올리며 꾸역꾸역 겨우 다 먹었다. 그냥 그 덮밥만 먹으면 좀 심심할 테고 해서, 아무래도 한국에서 가져간 김치로 덮밥의 심심함을 달래며 배부른 마음으로 하루를 마쳤다.

8월 3일, 4일
* 이틀의 일정은?
도쿄 과학 기술관(科學技術館)에서 열리는 행사 전반부 견학.
* 가는 방법
池袋(Ikebukuro)역에서 有樂町線(Yurakucho Line - 풀색)을 타고 飯田橋(Iidabashi)역에 간 뒤, 東西線(Tozai Line - 파랑색)을 타고 九段下(Kudanshita)역에 내린다. 약 30m를 걸어가면 과학 기술관이 있는 공원 입구를 찾을 수 있다.
사실, 그보다 한 정거장 더 가면 竹橋(Takebashi)라는 역이 있다. 이곳에서 내리면 과학 기술관에서 거리가 좀더 가깝지만, 앞의 역보다 30엔 가량이 더 비싸다. 30엔이면 원()화로 약 300원, 한국 지하철 기본 요금의 반이 아니던가. 기왕이면 아침에 공원의 나무들과 더불어 삼림욕을 하는 기분으로 걷는 것도 좋을 듯 싶다. 참고로 비용을 말하자면 九段下
(Kudanshita)역은 160엔, 竹橋(Takebashi)역은 190엔이다.
* 행사 전반부 견학 및 소감
일본에 출국하기 하루 전인 7월 31일.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일행은 COEX에서 열리는 '대한민국 과학 축전'에 다녀왔다. 그리고 도쿄에서의 둘째 날과 셋째 날은 '동경 청소년을 위한 과학 제전'을 견학하게 되었다.
오전 일찍 간 덕택에 본인이 찾아간 첫 부스인 B-120 부스 또한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그 부스는 선생님들이 발표작을 출품하였다. 주제는 'ミクロの世界發見(Micro 세계 발견)'. 여러 세포들을 현미경으로 관찰할 수 있었으며, 특히 일반인들이 쉽게 볼 수 없는 전자 현미경이 가장 인상깊었다. 전자 현미경에 캠코더를 연결해서 캠코더를 통하여 감자 세포를 관찰할 수 있었다. 서로 서툰 영어로 의사 소통을 하였지만, 그리 어렵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또 인상깊었던 부스는, 지진의 발생 정도에 따른 피해를 모형 제작을 통해 보여주는 실험이었다. 진흙과 자갈 이 둘 중 어느 것이 양쪽으로 흔들어 댈 때 물체의 이동이 더 혼잡해지나 하는 것이었는데, 진흙의 경우 자갈에 비해 무거운 물체는 아래로, 가벼운 물체는 위로 떠오르는 경향이 더욱 심하였다. 지진 다발 지역인 일본에서 이런 실험으로 아이들에게 지
진에 대한 인식을 심어 준다는 것에 순간 깨닫는 기분이었다.
많은 부스들을 돌면서 공통적으로 느낀 것을 정리해서 말하고자 한다. '대한민국 과학 축전' 또한 여느 대회와 마찬가지로 많은 시간의 준비 과정과 노력이 뒷받침되었지만, 이번 일본의 과학 제전에 비하여 미흡한 점이 많다.
굳이 비교해서 말하자면, 한국은 원리 중심의 실험과 그 설명을 주로 하는 데에 비해, 일본은 한마디로 백문이 불여일견, 직접 만들고 해보는 참여 형식이다. 이론 설명보다는 그 이론을 이용한 실생활에 가까운 실험들로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스스로 의문을 갖게 하여 과학에 친숙함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다.
또한, 어느 곳에서 어느 실험을 하는지에 대한 수첩 만한 책자와, 출품 실험 내용을 엮어 만든 책을 관람객들에게 배부하여, 직접 체험하지 못한 실험에 대해서는 책자를 참고할 수 있도록 배려한 점 또한 큰 차이이다.
마지막으로, 대한민국 과학 축전의 경우 3000원이라는 입장료가 따르는 데에 비하여, 일본의 과학 제전은 무료라는 점이다. 아무래도 입장료가 있는 것보단 없는 것이 사람의 관심을 끌기 마련인 것이 아닌가. 국비 보조로 이러한 행사가 열린다는 것 또한 생각해 볼 일이다.

[다섯, 여섯, 일곱째날] 동경 청소년을 위한 과학 제전에 참가하다.
혹, 유치원 시절에의 소풍을 바라보는 어린아이의 마음을 아는가.
달력에 이쁜 색연필로 동그라미를 쳐가며 소풍 날짜를 꼽아 보며
갖는, 그 아득하게만 느껴지는 멋모를 설렘.
이상하게도, 나의 어렸을 적 소풍은 그 당일 날보다는
그것을 기다리는 마음에 더욱더 가슴만 설레었던지 싶다.
그렇게 멀찍이 서만 지켜보던 듯 싶던 그 날이, 내 앞에 서 있다.
몇 달 동안의 많은 시간들이 그저 하룻밤 꿈같이 느껴지니 그전의
이유 모를 설렘과 두려움은 사그라지고, 단지 느껴지는 것은
배수진에 몰린 듯한 담담함뿐. 그 많은 시간들에 나는 무엇을
준비했단 말인가...
실험의 세팅을 위해, 평소보다 이른 아침을 먹고 과학 기술관으로
향했다.
덩그라니 놓여 있는 두 개의 테이블과, 실험 세트를 준비하고, 초조함에 떨리는 마음을 가다듬었다.
현지 staff들이 처음으로 찾아왔다. 이를 어쩌나. 그러나 전날의
그 끔찍했던 리허설과는 달리, 통하지 않는 말이 술술 나오기
시작했다. 비록 짤막한 영어에 일어 단어의 나열이었지만 신기하게도
설명은 가능했으니.. 이 누가 생각했던 일이란 말인가.
혹, 나중의 사람들을 위해 약간의 팁을 남길까 하니 선택은 자유.
거의 일본 사람들이 대부분이니, 언어의 두려움을 가질까 하나
그건 뒤로 제쳐도 될 듯 싶다. 왜냐면 사람이란 눈빛이 있으니까.
한국어로 말을 하던 일어로 영어로 하던 간에 사람에게 말을 할
때에는 눈을 쳐다보며 말을 하라. 또한, 말이 안되면 바디랭귀지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실험을 설명할 때 말이 안되면 행동으로 직접
보여 주면서 하는 것도 상당히 도움이 된다. 그러나 이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미소! 빳빳하게 굳어 있는
얼굴로 설명하면, 그 누가 긴장하지 않겠는가. 좀 가식적이라 느낄
지는 모르나, 얼굴의 미소는 그 무엇보다도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라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방문객들은 대부분 소학생(초등학생)이나 중학생, 아니면 각 학교의
과학 선생님들이 대부분이었다. 학부모들이 상당히 적극적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유치원이나 다닐까 싶은 아이들의 손을 잡고서
아이들의 졸린 눈빛에도 학부모들의 눈빛은 나를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던 듯 싶다. 어릴 때부터 이런 여러 행사들을 접하게 하는
일본의 학부모들에 상당히 인상깊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번 실험 아이템에 대한 반응들에 대하여 이야기해 볼까 한다.
우선, 이번 아이템은 가히 성공적이라 말하여도 좋을 정도로
인기가 많았는데, 그 이유는 바로 '참신한 창의성'일 듯 싶다.
대체로 물리 하면 딱딱한 이론과 함께 어렵게 느껴지는 실험들이
대부분이다. 아무래도 선입견을 갖게 되면 쉬운 실험도 어렵게
느껴지는 법. 그러니 이번 우리의 아이템은 우선, LED의 불빛과
함께, 인형이 통통 튕기는 것으로 사람들에게 호기심을 가지게
하였다. 또한 우리가 외국인(한국인)이라는 것 또한 그에 대한
이유가 아니었을까 싶다. 덕분에, 과학 잡지사의 인터뷰와
staff의 인기 실험 순위에 올랐으니, 이번 실험은 단순한 성공이
아니라 새로움의 시작을 열게 된 계기가 된 것이 아닐는지.
3일간의 눈코뜰새 없던 바쁜 일정을 마치고,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과학 기술관의 공원을 걸어나오며, 왠지 모를 아쉬움을 떨쳐
내야만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마침, 정치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야스쿠니 신사가 그 근처에 있었기에, 잠시 들리기로 하였다.
유난히도 맑던 며칠이었음에도, 야스쿠니 신사에 들린 우리의 머리
위로는..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아마 역사의 눈물이리라.
며칠 간의 눈 코 뜰 새 없는 일정 덕택인지 때문인지 지친 모두에게
촉촉한 단비가 내렸으니, 그것은 바로 회전 초밥! ^^
빙글빙글 돌아가는 초밥들을 바라보며, 본인은 회를 못 먹는지라
유부 초밥과 남들이 디저트로 먹는 것들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상당히 맛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제일 맘에 들었던 것은,
따뜻한 녹차를 맘껏 마실 수 있었다는 것.
그렇게,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3일간의 행사는
이케부쿠로의 가로등의 불빛과 함께 그 끝을 맺었다. ..

[여덟째날] 자유 일정.
그동안의 눈 코 뜰 새 없던 일정을 마무리를 지으며
일본에서의 마지막 자유시간을 만끽하기 위해
오랜만의 늦잠과 함께 전날의 부시시함으로
아침을 먹으러 1층에 내려갔다.
라면에 물을 붓고 기다리는데
김기열 선생님께서 가이드북을 바쁘게 보고 계신다.
아참, 오늘이 수미꼬 상이 오시는 날이구나..
도영이와 송이는 김기열 선생님을 따라간단다.
나는 뭐하며 하루를 보낼까 멍하니 생각하는데
같이 가잔다. 그래서 생각해 보니 그것도 괜찮을 듯.
수미꼬 상이 오셨다. 일어 억양이 섞이기는 했지만
한국어를 매우 잘 하셨기에 의사 소통에 지장은 없었다.
그렇게 부시시한 모습의 미키마우스 티를 입은 이 여인네는
그들과 함께 오늘 일정에 참여하기로 마음을 먹고
늦은 아침에 한국관의 문을 나섰던 것이다.
맨 처음으로 간 곳은 '동경 대학교(東京大學校)'
후문에 붉은 문이 있다 하여 별칭이자 애칭이 '아까몽(赤門)'
도착했을 때에는 약간 지난 정오의 싱그러움이
분수대의 나뭇가지에 맺혀 있었으니..
살짝 의과대학 본관에 들어가 보았다.
이리 기웃 저리 기웃 하다가 살짝 문 앞의 안내판을 보니
해.부.학.실.이.라.고... 허걱.. 놀래라.
다음, '도쿄 국립박물관'으로 향했다.
마침 '폼페이 최후의 날'이라는 전시회가 있어서
함께 견학하기로 하였다.
올 5월 초에도 이 전시회가 국내에 있었다고 한다.
일본에서 이런 전시회를 구경한다는 것이 약간 생소한
느낌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어쨌든 '백문이 불여일견' 아닌가.
비록 거의 모든 설명이 일어로 되어 있어 이해하기는 힘들었지만
감탄에 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폼페이의 역사에서부터 농경, 주택, 생활, 기타 등등의
모든 것들이 자세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폼페이는 이탈리아 남부 나폴리만(灣) 연안에 있던 고대 도시로,
BC 3세기 중반부터는 헬레니즘 문화의 영향이 매우 컸다는 사실이
발굴 결과 밝혀지고 있다. 그 후 BC 89년에 로마의 공격에 굴복,
지배를 받게 되었으며, 그 뒤부터 급격히 로마화(化)하였다.
폼페이에서는 대폭발이 있기 이전인 63년 2월에도 큰 지진이 일어나
큰 피해를 입었으며, 그 뒤 다시 복구되어 전보다 훨씬 훌륭한 도시로
재건되었으나, 79년 8월 베수비오 화산의 대폭발로 2∼3m 두께의 화산
력(火山礫)과 화산재가 시가지를 덮어 버렸다.
벽화를 포함한 초기의 발굴품은 대부분 나폴리의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전성기에 갑자기 멸망하였으므로, 당시 로마 도시의 일상생활을
자세히 알 수 있는 흥미로운 자료들이 발굴되었으며, 그것들은 상당히
쾌락적이고 현세 향락적인 도시 생활을 하고 있었음을 말해 주고 있다.
또한, 폼페이의 많은 벽화를 통하여 유품이 적은 헬레니즘 회화를 엿
볼 수 있다. (naver 백과사전 참조)
이렇게 전시회를 관람하고, 도쿄 박물관 본관으로 향했다.
본관에는 일본의 역사 순대로 전시가 되어 있었다.
그 중 인상에 깊게 남았던 것은 막부 시대의 진검(眞劍)들.
수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그 광기 어린 칼날의 검기는..
나의 머릿속을 피비린내의 진동에 사로잡아 발걸음을 멈추게 하였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검에 생명을 잃어 갔을지 괜한 마음이
앞서는 것일까.. 순간 착잡했던 것이 사실이다.
앞서 갔던 린카이후쿠도심으로 향했다.
전에는 일본풍의 배가 붉게 지는 노을을 배경으로
유유자적함을 즐기고 있었으나
이날의 강가는 말 그대로 물결의 잔잔함만이
일본에서의 마지막 여유를 바라는 마음들에
잔잔한 여운을 가져다 주었을 뿐.
귀여운 꼬마들이 강가에서 모래성을 쌓고 있다.
사르르 밀려오는 물결이 모래성을 스치고
아이들은 그 간지러운 손짓에 가식 없는 순수함으로
자신들의 맨발을 그대로 내맡기고 있었다..
아이들의 모습이 천진 난만 그 자체인지라
모두들 그 분위기에 동화되어 가는 듯한 느낌에
한 꼬마 아이에게 이름을 물어 보니
자신은 나나 짱이고, 그 옆의 대여섯살 남짓한 아이는
요이치꾼이라고.. (짱, 꾼은 아이들이나 친근한 사이에
붙이는 호칭이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의 김군 이라 표현하면
좋으려나? ^^;)
아이들과 한 컷의 순수함의 추억을, 잔잔한 물결에 두 손을
담가 보며 나 또한 순수함에 젖어 들었던 순간이었지 않았나 싶다.
마지막으로, 그렇게 노래를 부르고 불렀던
자금 문제 때문에 망설였던, 도쿄 디즈니랜드에 가게 되었다.
아쉽게도, 본인은 이에 대해 자세한 기억을 남기지 못하였으니
송이 양이나 도영 양의 기록을 참조하시길..
혹시나 하고 방심한 것이 이날 여러 사람을 괴롭혔으니
그저 미안한 따름일 뿐.. 지금에라도 심심한 사과를
구하고 싶을 뿐이다.
덕택인지 때문인지 세상에 도쿄 디즈니랜드의 다른 곳도 아닌
양호실에.. 침대에 누워 잠으로 그 시간들을 보냈으니..
미안하게도 김기열 선생님이 보호자로 옆에 함께
있어 주셔서.. 괜히 따라갔나 하는 마음에 미안했다.
김쌤, 지송해여^^; 글구 고마버영^^;
숙소에 와서.. 조그마한 베란다에서
도쿄의 밤하늘을 바라다보았다.
도쿄의 밤하늘은... 역시 흐리다.
저 흐리한 밤하늘엔 별 하나 보이지 않는다.
단지 희뿌연 그 무엇인가에 느껴지는 담담함.
떠나기 전의 담담함과는 다른
앞으로에 대한.. 담담한 마음..
왠지 자신에게 숙연해지는 순간이었으니..
이렇게.. 깊어 가는 생각 속에
도쿄의 밤 또한 깊어 가고 있었다...

[아홉째날] 이제, 또 다른 시작
시작과 동시에 끝.
알파와 오메가는
한낱 인간이 규정짓기엔
너무도 크나큰 개념들..
이렇게.. 끝남과 동시에
또 다른 무엇이 시작되고 있었다.
아직 이 순간에는 느끼지 못하는..
- Narita 공항에서 끄작거린 낙서들 중에서..
8일간의 일정을 무사히 끝마치고서
Narita 공항의 28A Gate의 소파에 앉아
끄작거린 낙서들과..
수많은 생각들의 교차점 속에서
내가 무엇을 하였고 무엇을 생각하였고
무엇들을 느꼈는가.. 하는 것에
이제까지의 '나'와 앞으로의 '나'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았다.
그 9일간의 시간들을 위해
참 많이 울었고 힘들어했던 것 같다.
또한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앞섰던 것도
부정할 수 없었을 듯 싶다.
그러나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게 힘든 시간들이 있던 만큼
앞으로의 시간들에 밝게 웃을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에.. 이렇게 오늘도 또 한발을 내딛어 본다.


[편지] 일본에서 보내 온 편지들..
<스미코상께서 보내 주신 메일들>
제목 제목 없음
보낸 날짜 2001년 08월 10일 금요일, 오전 10시 58분 33초 +0000
보낸 이 "$B:4Ln(B $B@!;R(B" [주소록에 추가] [수신거부에 추가]
받는이 mypiece@hanmail.net
안녕하세요!
나는 사노수미꼬에요.
잘 도착했어?
몸은 어때?
언제 또 만나자!
안녕!